영모재에서 만난 봄빛과 조용한 재실의 깊은 숨결
봄기운이 막 퍼지기 시작한 4월 초순, 성주 금수면의 영모재를 찾았습니다. 산자락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재실은 마을의 중심이면서도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자 바람이 느리게 흘렀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길게 비치며 돌담 위로 따스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영모재의 지붕선은 단정하고 낮았습니다.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오래된 목재의 결이 선명하게 보였고,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왔습니다. ‘영모’라는 이름처럼 조상의 뜻을 잇는 공간답게, 문 안쪽 공기는 차분하고 정숙했습니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 마을 어귀에서 재실로 이어지는 길
영모재는 성주군 금수면사무소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의 낮은 구릉지에 자리합니다. 내비게이션에 ‘영모재’를 입력하면 좁은 농로를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길가에는 복사꽃이 피어 있어 봄철에 특히 아름답습니다. 차량 접근은 가능하지만 주차장은 크지 않아 도로변에 잠시 정차하는 편이 낫습니다. 도보로는 금수면 중심에서 약 10분 거리이며,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는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돌담 너머로 기와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낮게 드리운 느티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며,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생기가 느껴졌습니다.
2. 재실의 구조와 내부의 질서
영모재는 ㄷ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방이 이어집니다. 기단은 낮지만 견고하고, 지붕의 곡선은 완만해 안정감이 있습니다. 마루에 오르면 나무의 결이 부드럽게 닳아 있었고, 햇살이 벽면의 창살무늬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중앙 대청마루에는 오래된 향나무 향이 남아 있었고, 작은 단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건물 뒤편으로는 조용한 대숲이 이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부드러운 소리를 냅니다. 공간 전체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발 아래에서 삐걱거리는 나무소리조차 리듬처럼 들려, 오랜 세월이 만든 조화로움이 느껴졌습니다.
3. 영모재의 역사와 상징적 의미
영모재는 조선 후기 금수면 일대의 유력 가문이 조상을 기리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세운 재실로, 건립 연대가 18세기로 추정됩니다. ‘영모(永慕)’는 ‘영원히 그리워한다’는 뜻을 지니며, 단순한 제향 공간을 넘어 가문의 정신을 잇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다른 지역의 재실과 달리 규모는 아담하지만, 세부 목재 조각이 매우 섬세합니다. 기둥머리에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고, 처마 밑에는 퇴색된 단청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문을 열면 시야가 정면으로 트이며, 작은 연못이 보이는데 이는 풍수적으로 조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건축미보다는 정신의 결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단정한 비례 속에 깊은 뜻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4. 정갈한 부속 공간과 세심한 배려
영모재 뒤쪽에는 제향 시 사용되는 작은 부엌과 창고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단출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도구 하나하나가 정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루 옆에는 방문객이 앉을 수 있는 평상이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습니다. 주변에는 조화를 이루듯 심어진 매화나무와 대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향긋한 내음이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안내문에는 재실의 역사와 관리 가문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글씨체마저 정갈했습니다. 인공적인 조명이나 장식이 없어서 자연광이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많지 않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5. 금수면 주변의 연계 방문지
영모재 관람 후에는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금수서원’을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두 곳 모두 같은 역사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어 이어서 보면 이해가 깊어집니다. 차로 10분 이동하면 ‘무학산 자락 산책길’이 나오는데,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져 가벼운 트래킹 코스로 적합합니다. 또한 금수면 입구의 ‘성주 한옥카페 금수헌’에서는 전통차와 다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근처 ‘성주향교’로 이동해 조선 유학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루 코스로 돌아보면 성주의 전통 건축과 학문적 유산을 함께 체험할 수 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과 관람 팁
영모재는 마을 중심부와 가까워 평일에도 주민 왕래가 잦지만, 제향일 전후로는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조용히 관람하기 위해서는 오전 10시 이전 방문을 추천합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를 수 있으며, 내부 기둥에 기대거나 손으로 문살을 만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봄철에는 벌이나 곤충이 많아 긴 소매 옷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바닥이 젖기 때문에 미끄럼 방지 신발이 유용합니다. 사진은 외부 중심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으며, 플래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시간 남짓 머무르면 충분히 공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영모재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의 정성과 품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재실이었습니다. 건축물 자체보다 그 안의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나무와 돌이 지닌 시간의 무게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여름 장마가 지난 뒤의 싱그러운 초록 속에서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리도 냄새도 은근한 그 고요함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느슨하게 이어지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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